칼럼

예수님이 사랑하신다

행복한교회 2022.03.12 21:46 조회 수 : 89

우리는 ‘사랑을 많이주면 사랑도 많이 베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자녀에게 많은 사랑을 베푸는 부모가 되기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형제 중에서 막내가 유독 사랑을 많이 받는데, 오히려 다른형제들에 비해 사랑을 주기보다는 자기 중심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보면 ‘사랑을 많이 받으면 사랑을 많이 할것'이라는 생각은 어느정도 환상인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와 요한은 12명의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였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항상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얼굴이 변화한 것을 목격한 몇 안되는 제자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자신을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로 소개하기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잘 알고 있듯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였고, 요한은 십자가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상태로 그저 예수님의 고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제자들이 이렇게 예수님이 주신 사랑을 증명할 만한 능력도 용기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별반 다를바 없었겠지만 사랑을 베푸셨고 끝까지 용납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다보면 ‘도대체 사랑은 무엇인지, 또 사랑은 누가 어떻게 할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로 살아가지만 때로는 그 사랑을 부정하기도 하며 마치 사랑없이 자란 사람처럼 매정하며 이기적인 태도로 살아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보면 요한복음에는 유독 베드로와 요한이 집중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두명의 제자의 눈에 비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마치 예수님의 사랑으로 제자들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밀도있게 기록한 듯한 인상마져 지울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도망가버린 제자들이 있던 곳으로 가셔서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분위기를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요21:12)

 

마음같아선 ‘십자가에서 죽을 고통속에 있을때 너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라고 호통이라도 쳐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번이나 물어보십니다. 무너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베드로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할수 있는 사랑의 한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앞에 한없이 초라한 자신의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사랑이 그치고 예수님의 사랑이 시작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사랑하셨고 이제 그 사랑으로 우리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