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1)

행복한교회 2023.04.22 15:30 조회 수 : 42

‘자녀가 발달 장애를 갖고 있음을 알게되는 때부터 부모의 유일한 소원은 자녀보다 하루를 더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지난 3월 21일 여의도에서 발달장애 부모님들의 농성에서 기자에게했던 어느 부모님의 말입니다. 사회적인 편견과 평생 돌봄이라는 막막한 상황에 갇혀있는 부모님들이 정부에 지원과 관심을 호소하는 농성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자녀를 위해 무한의 책임을 지려하는 부모의 마음은 숙명과 같은 일일 것입니다.(총회에서는 4월 셋째주를 장애우 주일로 지킵니다)

더구나 그 죄에 대한 논쟁은 당시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날 제자 중 한사람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9:2)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바라보셨고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제자가 이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사람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며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대화가 오갈수 밖에 없었을 까요? 부모나 그 주변 가족의 부지불식간의 죄 때문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알수 없는 본인의 죄 때문이라고 가르쳤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눈을 뜨게 된 맹인의 부모를 불러 그들의 자존감을 다시한번 무너뜨리려고 할 때 두려움에 떨던 부모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사실 알지 못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렇지만 마치 정답을 알고 있는 듯 정죄하여 알게 해주려는 그들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누가 진짜 맹인이며 누가 진짜 알지 못하는 사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