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늦은 시간에 도착한 입국장엔 입국심사위원이 3명 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는 만석에 사람들도 꽤 많았던 터라 저희는 돌이 막 지난 아기를 안고 가득 짐을 들고 줄 맨 끝에 서게 되었습니다. 입국 심사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고 저희 차례까지 오려면 한 두시간은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줄을 지키던 직원이 갑자기 저희 가족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뚫고 앞쪽으로 세우더니 먼저 입국심사를 받도록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뭐 잘 보인 것도 없는데 이런 기적같은 일이…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구나!’ 라는 근거없는 감사를 하던 중에 조금 지나서 왜 이런 기적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희가 안고 있는 ‘아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아기를 안고 있는 우리 부부의 고단함을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기’ 그 자체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가는 곳에서 경계를 쉽게 허물고 다가와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왜 이렇게까지 아이들에게 친절할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있는 문화와 환경에서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이 그들을 친절하게 만들고 배려하게 만드는가 였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듯해지기 때문 일까요? 

과거의 행복했던 경험을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떠올릴 수 있기 때문 일까요? 

순수함과 천사같은 거룩함 때문 일까요?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늘 피곤에 지친 삶을 사셨습니다. 어느곳에서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사람들이 따라다녔습니다. 때로는 예수님 앞에서 다투며 도전하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런 제자들은 인파를 제치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제치고 어린 아이에게 기도받기를 바라며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지금처럼 바쁘고 정신없을때 아이에게까지 관심을 줄 수 없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마19:14)

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예수님도 아이들을 유독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을까요?